우울증인지 뇌파검사로 알 수 있나요?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정말 우울증이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남들도 다 이 정도는 힘들지 않나요?”

힘든 것은 분명한데, 그것이 치료가 필요한 정도인지는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을 들으면 더 헷갈립니다.

정신과 평가는 대부분 면담과 설문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설문은 내가 답한 만큼 나옵니다. 힘들다고 답하면 힘들게 나오고, 괜찮다고 답하면 괜찮게 나옵니다. 그래서 내 대답과 별개로 나오는 자료가 하나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정량뇌파검사(QEEG)⁠가 그런 자료 가운데 하나입니다.

멘탈탄탄 채널에서 원장 한 명이 직접 뇌파를 찍고, 동료 원장들과 결과지를 함께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뇌파 결과지를 어떻게 읽는지, 그리고 뇌파로 알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정리했습니다.

뇌파검사는 무엇을 재나요?

뇌는 활동하는 동안 아주 작은 전기 신호를 냅니다. 머리 표면에 전극을 붙여 이 신호를 기록하는 것이 뇌파검사입니다. 전기를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만 하므로 아프지 않습니다.

정량뇌파검사는 기록한 신호를 속도별로 나눠 각각 얼마나 많은지 계산하고, 같은 나이대 사람들의 기준 자료와 비교합니다. 결과지에는 기준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가 색으로 표시됩니다. 평균 범위 안이면 흰색에 가깝고, 기준보다 많으면 노랑과 빨강, 적으면 파랑 쪽으로 표시됩니다.

빠른 파와 느린 파는 무엇이 다른가요?

뇌파는 속도에 따라 이름이 붙습니다. 델타파와 세타파는 느린 파, 알파파는 그 중간, 베타파와 하이베타파는 빠른 파입니다.

빠른 파가 기준보다 많이 나오면 뇌가 과도하게 각성되어 있는 상태로 보통 해석합니다. 걱정이 많거나 불안할 때, 같은 생각이 반복해서 떠오를 때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황장애 환자분들을 대상으로 한 국내 연구에서도 쉬고 있는 동안 하이베타파가 높게 나왔고, 이마 쪽 하이베타파가 높을수록 공황 증상이 심했습니다.

다만 이마나 턱에 힘이 들어가 있으면 근육의 신호가 빠른 파 대역에 섞여 들어옵니다. 그래서 빠른 파가 높다는 결과 하나만 보고 불안하다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느린 파가 많으면 각성도가 떨어져 있거나 그 부위 뇌 기능이 감소되어 있는 것이라 해석하기도 합니다. 집중이 잘 안 되고 의욕이 떨어졌을 때, 잠이 부족할 때 이런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물론 이는 대략적인 방향성이고 그 부위와 전체 뇌파 패턴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럼 우울증이 뇌파에 다 나오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울증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뇌파 소견은 좌우 이마 쪽 알파파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우울증 환자분과 건강한 분 4천여 명의 자료를 모아 분석했더니 두 집단 사이에 의미 있는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뇌파 하나로 우울증이다, 아니다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뇌파가 기준과 비슷하게 나와도 우울증일 수 있고, 뇌파에 눈에 띄는 소견이 있어도 우울증이 아닐 수 있습니다. 진단은 면담에서 증상이 얼마나 오래 이어졌는지, 생활에 얼마나 지장을 줬는지를 듣고 정합니다.

그래도 찍어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뇌파는 진단을 대신하지 않지만, 지금 뇌의 상태를 설명하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말로만 설명하는 것보다 결과지를 같이 보면서 이야기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누우면 같은 걱정이 계속 떠올라요”라고 하신 분의 결과지에서 빠른 파가 높게 나와 있으면, 본인이 느끼던 것과 검사 결과가 같은 방향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결과를 설명하다 보면 표정이 달라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힘들다고 말해도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는 말을 듣던 분들입니다. 내가 힘든 것이 검사 결과로 남는 것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뇌파 검사는 치료의 방향을 정하는 자료로도 씁니다. 불안과 걱정 쪽이 두드러지는지, 기운과 집중이 떨어진 쪽이 두드러지는지를 증상과 함께 봅니다.

결과는 언제의 상태를 보여 주나요?

뇌파는 대략적으로 최근 1개월 가량의 상태를 보여 줍니다. 그 무렵 스트레스가 컸는지, 전날 잠을 얼마나 잤는지,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결과지를 볼 때 검사 무렵의 생활도 함께 여쭙습니다.

치료를 받고 상태가 달라진 뒤 다시 찍으면 처음 결과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언제 받아 보면 좋을까요?

  • 힘든 것은 분명한데 내 상태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때
  • 불안과 우울, 무기력 가운데 어느 쪽이 큰지 스스로도 헷갈릴 때
  • 치료를 받고 있는데 나아지는 속도가 더딜 때
  • Deep TMS 같은 뇌자극 치료를 상의할 때

진료에서 뇌파검사를 권해 드리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상태를 이해할 자료를 하나 더 얻기 위한 검사입니다.

검사 안내, 뇌파검사로 무엇을 알 수 있나요?

자주 묻는 질문

뇌파가 정상으로 나오면 우울증이 아닌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증상이 분명한데 뇌파가 기준 범위 안에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진단은 면담과 척도검사 등의 자료들을 종합해서 합니다.

검사 전에 준비할 것이 있나요?
전날 평소처럼 주무시고, 검사 직전에는 커피 같은 카페인 음료를 피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드시는 약은 임의로 끊지 마시고 무엇을 드시는지 알려 주십시오.

결과는 직접 볼 수 있나요?
진료에서 결과지를 함께 보며 설명해 드립니다. 그림 하나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증상과 함께 말씀드립니다.

한 번 찍으면 결과가 계속 같은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무렵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 다시 찍으면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참고한 자료

  • 우울증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전두엽 알파 비대칭을 비교한 메타분석
  • 정량뇌파로 우울증 치료 반응을 예측한 연구들을 검토한 메타분석
  • 공황장애 환자의 안정 시 정량뇌파 소견에 관한 국내 연구
  • 근육 활동이 빠른 뇌파 대역에 섞이는 현상에 관한 연구

이 글은 일반적인 의학 정보입니다. 개인의 진단과 치료는 진료를 통해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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